전기를 쥔 나라가 AI 시대를 지배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패권은 AI툴 개발이나 반도체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싸게, 얼마나 오래 확보하느냐도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를 약 415TWh, 세계 전력소비의 약 1.5%로 추산했고, 2030년에는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AI는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혁명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전력을 먹는 ‘물리적 산업혁명’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의 경고는 그래서 가볍지 않다.
그는 AI 확장의 3대 병목으로 칩, 변압기, 그리고 발전능력을 꼽으며 “전력 생산 부족 문제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경쟁의 본질이 계산능력 경쟁인 동시에 전력 인프라 경쟁이라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직설적으로 말한 셈이다.
비트코인 채굴은 이 현실을 먼저 보여준 사례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내 비트코인 채굴 전력사용량이 연간 25~91TWh, 미국 전체 전력수요의 0.6~2.3% 수준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비트코인 채굴 전력소비가 한 나라의 연간 전력소비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비트코인 채굴로 세계의 전력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은 AI가 전기 의존적 산업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경고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데이터센터와 에너지를 함께 확보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 상징적 사례가 파라과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타이푸 댐 수력발전으로 자국 전력수요의 80~90%가량을 해결하고 있는 파라과이는 값싸고 안정적인 청정전력을 무기로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다소비 산업을 유치하고 있다.
AI가 몰려가는 곳은 단순히 규제가 느슨한 나라가 아니라 전기가 넘치고 싼값으로 쓸 수 있는 나라다.
여기에 또 하나의 거대한 충격파가 덮쳤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갈 선박에 대한 위협을 계속 강조하면서 사실상 봉쇄가 나타나자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약 20~30%가 차단됐다.
걸프국들은 하루 원유 생산량을 전쟁 전의 40% 수준으로 줄였고,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지만 공급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이 당장 내일 끝나더라도 세계 에너지 시장이 정상화하려면 최소 4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상황은 한국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산이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국내 제조업 전체의 생산비는 0.71% 증가하고 석유제품 산업은 6.30%까지 치솟는다.
원유값 급등은 주가를 흔들고, 금리 인상 압박을 높이고, 서민 물가를 끌어올린다.
AI 시대의 전력 위기와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이중 비상사태에 한국이 놓인 것이다.
석유를 포함한 화력발전은 여전히 세계 발전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원자력·수력·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당장의 전력 공급을 화석연료 없이 버텨낼 나라는 거의 없다.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한 유가 문제가 아니라 문명 전체의 에너지 기반을 흔드는 사건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세계 5위 수준의 GPU 연산자원 확보,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 2028년까지 권역별 소형 GPU 팜 4개소 구축, AI 데이터센터 전력·용수 인프라 적기 공급,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고도화와 고효율 냉각기술 적용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별도의 국가 AI 컴퓨팅 센터 실행계획에서는 2028년까지 1만5000개 이상의 GPU를 추가 확보하고, 전력영향평가 절차를 신속화하며, 재생 또는 무탄소에너지를 활용하는 입지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AI를 국가 인프라로 키우겠다는 선언이지만, 그 성패는 결국 전력 인프라의 속도에 달려 있다.
중동 위기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응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이란 관련 긴장 고조 이후 석유·가스 수급을 긴급 점검하고 7개월분 이상의 비축유와 높은 LNG 재고를 바탕으로 단계별 비상대응계획을 가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석유·가스 비상대응반을 통해 일일 수급상황을 밀착 점검하고 유관기관·업계와의 공조 및 물가 안정 관리도 병행하겠다고 했다.
에너지 안보는 평시에는 숫자로 보이지만 위기 때는 곧장 국민경제의 체감 물가와 산업 경쟁력으로 돌아온다.
이런 시대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새 발전소를 짓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있는 전기를 더 똑똑하게 쓰는 일’이다.
그 점에서 박기주 스마트파워 의장이 내놓은 GEMS(Generator Energy Management System)는 흥미로운 발상이다.
대형 건물과 공장에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지만 평소 거의 놀고 있는 비상발전기를 피크전력 구간에 자동 투입해, 초과부하를 분담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상용전원과 발전기 주파수를 동기화해 목표전력을 넘는 순간 비상발전기가 전력을 나눠 맡고 피크가 내려가면 자동으로 멈춘다.
최대수요전력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핵심 부담이므로 이를 낮추면 다음 해 기본요금을 줄여 전체 전기요금을 크게 낮추는 구조다.
이 방식의 의미는 개별 건물의 전기요금 절감에만 있지 않다.
스마트파워는 저소음·저매연 기술을 적용한 비상발전기와 GEMS를 통해 최대전력요금을 줄이고 전력 수요관리(DR) 시장과도 연계해 전기요금을 30%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현재 전국 약 11만곳에서 잠자고 있는 비상발전기를 GEMS를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원전 수십 기에 맞먹는 분산전원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에너지 시대의 해법은 공급 확대와 함께 수요 관리, 피크 절감, 유휴자산 활용을 동시에 밀어붙이는 데 있다.
여기에 한 사람이 가세했다.
웅진코웨이의 신화를 만든 두진문 회장이다.
정수기 렌탈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생활을 바꿔놓은 그가 박기주 의장과 손을 잡았다.
두진문 회장은 과거 웅진코웨이에서 쌓은 대규모 컨설턴트 마케팅과 고객 관리 노하우를 살려 에너지 컨설턴트 조직을 구축하고 GEMS를 전국에 확산시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에너지 절감의 효과를 직접 분석해 고객에게 전달하고 시스템 도입부터 운영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렌탈이라는 생활 혁명을 일으켰던 방식이 이번에는 에너지 절약이라는 환경 혁명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AI 시대에 세계 각국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경쟁에서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하는’ 나라만 아니라 ‘더 영리하게 절감하는’ 나라도 그 승부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발전소를 더 짓는 일도 필요하지만 피크를 내리고, 유휴 비상발전기를 자산으로 바꾸고, 데이터센터의 입지와 냉각 효율을 혁신하고, 국가 차원의 전력·연료 비축 체계를 고도화하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
GEMS와 같은 에너지 절감기술이 시장기능을 통해 민간차원에서 금융과 연계되고 대규모 유통역량으로 확산된다면 에너지 절감은 단순한 비용 절약을 넘어 새로운 친환경 산업 서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전기를 절감해 에너지를 확보하고, 발전소 증설을 억제해 국민 세금을 아끼고, 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를 지키는 사업. 위기의 시대에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빠른 해법이 여기 있다. 이러한 도전이 단순한 사업을 넘어 에너지 시대의 국가적 과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
곽보현
블록체인투데이 발행인